2024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작년인 2023년도에는 길고 길었던 취업 준비 기간을 견디며 취업에 성공했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더 힘든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2024년 새해가 밝아오고 동시에 나는 A형 독감에 걸려 끙끙 앓으면서 방에서 누워만 있었다. 새해인데 본가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새해는 아픔을 시작으로 힘들게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작스레 회사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로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급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밀린 급여는 다 지급해 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지켜보자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1월 중순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별세하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본가로 내려갔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었고 매일 같이 병원에 모시고 다니느라 정말 힘들고 미운 기억뿐이었는데 막상 이런 소식을 듣고 나니 머리가 멍해졌다. 정신없이 차를 끌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발인일이 되어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마음 속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던 것 같다. 살아생전 미워만 했던 할아버지였는데 아무리 미울지라도 할아버지라서 그랬던 걸까.. 괜스레 잘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6.25 참전용사셨던 할아버지는 호국원에 모시고 그렇게 1월이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급여를 언제 주겠다는 어떠한 말도 없었고 급여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표는 숨어서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매일 불안 속에서 하루, 하루 버텨갔던 것 같다. 언젠가는 급여가 나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3개월째 급여가 밀려 생활비도 빠듯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장 나부터 살 궁리를 먼저 해야 했다.
내가 살면서 임금체불이라는 것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나도 처음 겪는 일에 많이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쳐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오히려 더 차갑게 현실적으로 내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급여가 나오지 않을 경우 몇 개월 동안 버틸 수 있는지 계산을 마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대한 아껴 쓰며 버텨갔던 것 같다.
다행히 3월에 밀린 급여를 받게 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급여가 나오지 않았고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직원들은 계속해서 임원분들 그리고 대표와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대표는 아무런 미안하다는 말도 언제 급여를 주겠다는 말도 그 어떠한 말도 해주지 않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동료들과 나는 정말 너무 답답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6월에 많은 동료분들이 퇴사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임금체불 신고를 하고 나서야 밀린 급여를 다 지급받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하는 순간 나도 정말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퇴사하지 않고 급여를 받을 때까지 남아있자는 생각을 했었고 내가 퇴사를 하더라도 밀린 급여를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장 나가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자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이력서를 내면서 이직 준비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직은 급여가 나오지 않았던 순간부터 준비를 했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서류 합격률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면접에서 아쉬운 결과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7월에 지금 다니고 있는 두핸즈라는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8월 초 드디어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최종 면접에서 애매하게 대답한 부분이 많았고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이 어렵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기쁜 감정보다는 다행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난 1년 간 나를 힘들게 했던 회사를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곧장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회사에 전달하고 나니 대표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대표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나에 대한 칭찬을 늘여놓았고 앞으로 회사가 변화할 것이라는 말과 급여가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나도 그동안 회사에게 바랬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했다. 아쉬웠던 부분들과 바뀌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부분들을 솔직하게 대표에게 이야기했고 마지막에 다른 회사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마자 대표는 곧바로 정색하면서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악수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떻게든 잡고 싶었지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순간 바로 뒤돌아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면담을 끝으로 나는 퇴사 서류를 준비하고 그렇게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절차를 밟으면서 밀린 급여와 퇴직금, 연차 수당 등을 언제까지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끝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소식을 들어보니 급여가 밀리지 않겠다고 했던 대표의 말과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급여가 밀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정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급여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기분 좋게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일주일간 온보딩을 한다고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 열심히 업무에 대해서 이해하고 물류센터에 가서 피킹, 패킹 체험도 해보고 그렇게 회사에 열심히 적응하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지급해 주겠다고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지급일이 되었어도 밀린 급여와 퇴직금에 대한 아무런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바로 인사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왜 밀린 급여와 퇴직금은 주지 않는지 물었더니 회사에 돈이 없어 지급하기 어렵다는 대단만 돌아왔다. 그리고는 관련된 내용을 다시 메일로 전달해 주겠다는 말과 언제까지 지급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정말 화가 많이 났던 부분은 단 한 마디의 사과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급여를 줄 수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하는 뻔뻔한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인사팀도 급여를 받는 입장에서 나와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민없이 곧장 임금체불 신고서를 작성했고 노동청에 제출했다. 제출하자마자 노동청에서 연락이 왔고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한 후에 상대방이 지급하겠다고 하면 2주간 기다렸다가 지급 내역을 확인해서 고소할지 취하할지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날이 다가왔고 퇴근할 때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고소할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것은 노동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이미 같은 회사에 신고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신고한 분들이 다 받았기 때문에 어차피 받을 것이니까 임금체불 신고를 취하한다는 문자를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정말 어이가 없었고 어차피 돈을 받을 것이니까 취하하라는 게 무슨 말인지 노동청 담당자에게도 화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괘씸해서 최하 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하루종일 기다려봤지만 역시 약속을 지킬리 없다는 생각에 소송까지 해야겠다고 체념한 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도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좌 내역을 확인해 봤더니 보는 순간에 급여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오후 10시 20분쯤이었던 것 같다. 밀렸던 모든 급여와 퇴직금이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임금체불 신고를 취하하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렇게 길고 길었던 임금체불은 다행히 잘 해결되었던 것 같다.
밀린 급여와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니 그동안 불안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점차 해소되고 있었고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정말 힘들었었는데 이렇게 받게 되니 정말 다행이고 다행이었다. 다행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가족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옆에서 같이 힘들어하고 걱정했던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항상 든든한 가족에게 곧장 이야기했고 다들 고생했다며 다행이라며 해주는 모든 말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특히 여자친구에게는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던 것 같다. 내가 급여가 밀리게 되면서 놀라가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내 눈치만 보게 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고 옆에서 계속해서 힘이 되는 말들과 버틸 수 있게 도와줘서 그래서 정말 많이 고맙고 미안했다.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이직을 한지도 벌써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수습 기간도 잘 마무리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송년회를 다같이 보내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돌이켜보니 정말 몸도 많이 아팠고 힘들었고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나는 정말 평소에도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작년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잘 버텼고 잘 지나갔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올해에는 작년에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묻어두고 좋을 일만 가득한 2025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번 돌이켜보면 과거에 지나간 일들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 게 아니게 되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에는 좋은 추억만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24년 안녕! 그리고 2025년 화이팅! 😆